1728년 무신봉기(이인좌 난)로 파괴된 조상림(曺上林) 선조의 묘소로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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孤竹先生 작성일25-12-30 17:32 조회6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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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8년 무신봉기로 파괴됐던 조상림(曺上林, 1361~1421)선조의 묘소로 추정되는 연꽃 무늬 둘레석이다. <이미지 출처: 내가 2012년 3월 창녕군 문화예술과에 요청하여 메일로 받음>
창녕군 대합면 장기리 산 38-2번지(12834㎡)에 있다. '해주오씨 전서공파(공조전서·工曹典書 오광정) 갑곡문중 무솔소문중회' 명의로 등기돼 있다. 1728년(영조4) 무신혁명(조성좌의 난) 후 영조가 병조판서 겸 도순무사였던 오명항에게 조성좌·정좌·세추로부터 적몰한 재산(산 38-2)을 하사하고, 그 뒤 오명항 문중에서 무솔소문중으로 소유권을 넘겨 준 것으로 판단된다.
사료 분석과 자료 점검 등을 통해 내가 내린 결론이다.
조상림(曺上林) 묘갈명은 1618년(광해10) 조상림 7세(6대)손 형조참판 이양당 조탁(二養堂 曺倬, 1552~1621)이 지었고, 8세손 한림(봉교) 조정생(曺挺生, 1585~1645)이 썼는데, 1728년(영조4) 3월 무신혁명 후 묘비석은 파괴돼 소실됐다.
창녕조씨 족보에 창녕 개복리(介福理) 율곡(栗谷) 묘좌(卯坐)로 등재돼 있는데, 위 장기리 산 38-2와 일치한다. 조상림은 1415년 진사에 합격하고, 정3품 서경(평양)부유수(西京副留守)를 지냈는데, 합천, 상주, 파주 등지에 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다.

▲연꽃 무늬가 보인다.조상림(曺上林)묘갈명은 1618년(광해10) 조상림 7세손 공조참판 이양당 조탁(二養堂 曺倬, 1552~1621)이 지었고, 8세손 한림(봉교) 조정생(曺挺生, 1585~1645)이 썼는데, 1728년(영조4) 3월 무신혁명 실패 후 묘갈은 파괴돼 소실됐다.

▲태복경 흥(太僕卿 興) 및 아들인 (좌측부터) 계림(桂林)-상림(上林)-중림(仲林)공 제단이다. 창녕군 고암면 간상리 산 111번지(29355㎡) 딱밭골에 있다. 1994년 11월 특별조치법으로 보존등기했다.
1728년(영조4년) 무신혁명실패로 묘소가 실전되고 묘비석은 파괴돼, 1991년 11월에 설단(設壇)했다. 1728년(영조4) 무신혁명 후 파괴됐던 조상림(曺上林)공 묘소로 추정되는 창녕군 대합면(옛 개복면) 장기리 산 38-2번지는 8km 떨어져 있다.
성호 이익(星湖 李瀷, 1681~1763, 부: 대사헌 이하진)은 성호전집 권53 등과기(登科記)에서 “(1728년 영조 4년 3월) 무신변란(戊申變亂, 주: 무신혁명) 후에 명문거족, 이름난 사람, 유명한 선비, 고관대작, 지위가 미천한 사람을 불문하고 모두가 형벌(刑罰)을 당해 죽었고, 수년 동안 기상이 꺾여 무너진 것이 파멸적 재앙이 휩쓸고 지나간 뒤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가 된 것과 진배없다. 오직 우리 여주 이씨(驪州李氏)만은 노소귀천 모두 형옥(刑獄)의 죄안에 오른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성호 이익 첫장인 문중인 청주 낭성 고령신씨(申氏)와 둘째장인 문중인 서울 방이동 사천목씨(睦氏), 그리고 성호 자형 문중인 문경-상주-합천(묘산-봉산면) 창녕조씨(曺氏)는 대거 가담하여 풍비박산됐다.
그후 59년이 지나 1787년(정조11) 성호 이익(부: 대사헌 이하진) 고모부이며 이조판서 정종영(鄭宗榮, 1513~1589) 6세(5대)손 정득주(鄭得柱, 1685~1703, 장인: 대사헌 이하진, 양자: 정덕주 차남 정희세) 문중이 무신여당(戊申餘黨)이라고 하여 결딴났다.
즉 팔계군 정종영(八溪君 鄭宗榮) 8세(7대)손인 횡성 벽옥정(碧玉亭, 공근면 학담리)의 정무중(鄭武重)과 원주 봉산동의 동생 정현중(鄭鉉重, 1718~1787, 부: 진사 정희기, 조부: 정덕주, 큰조부: 정득주), 정현종 아들 정진성(鄭鎭星, 1746~1787)과 조카 정진혁(鄭鎭爀, 일명: 鄭鎭一 1747~1787, 부: 鄭冕重, 조부: 정희기, 장인: 안동김씨 김동철) 등이 1787년(정조11) 6월 제천의 김동철(金東喆, 무신혁명 김덕유 11촌 조카)·동익(東翼), 김증열(金曾悅, 일명: 金鎭圭, 김동철 아들), 김성옥(金聲沃, 김증열 아들), 김송대(金松大, 김동철 7촌 조카), 유득겸(柳得謙, 정종영 장인인 유엄 후손?), 충주의 동고 이준경(東皋 李浚慶, 영의정) 자손(子孫, 9세손)인 이상겸(李商謙) 등과 함께, 해도(海島, 섬)에 정배돼 있는 1728년(영조4) 무신변란 정희량(鄭希亮, 1685?~1728)의 손자 정함(鄭醎, 일명: 정응주·鄭應周, 부: 鄭鐵興)과 이인좌(李麟佐, 1695~1728)의 아들 및 손자를 추대하여 군사를 일으키려다 처형 또는 정배된다. 1728년(영조4) 3월 당시 이인좌의 네 아들은 이중명(李中明, 12세)·문명(文明, 9세)·화명(化明, 6세)·인명(仁明, 2세)인데, 15세(만14세) 이하인 관계로 교살되지 않고 함경도 온성부 및 회령부에 관노로 발배됐었다.
이처럼 1728년 무신잔당(戊申殘黨, 제2 무신거의)이라고 하여 큰 화(禍)를 입은 성호 이익 고모부 정득주(鄭得柱, 동생: 정덕주<鄭德柱, 장인: 성호 6촌형 李溭>, 장인: 성호 아버지 이하진)의 초계정씨대제학공파(관동파)는 폐고(廢錮)됐다.
또한 이조판서 항재 정종영(恒齋鄭宗榮) 맏사위가 최경상(崔景祥)인데, 최경상 증손인 원주 출생 최동익(崔東益, 1641~1705, 생원)은 1728년 무신변란 핵심 인물로 참수된 이천(利川) 거주 유명한 한의사 임서봉(任瑞鳳, 1678~1728, 5대조: 북인 이조판서 임국로, 묘소: 이천시 부발읍)의 장인이다. 최경상 아버지는 최수증(崔壽嶒, 군수), 조부 최세절(崔世節, 1479~1535, 호조참판)이며 증조는 최응현(崔應賢, 1428~1507, 병조참판)이다. 정종영 장남인 정약(鄭爚)의 막내사위가 이인좌(李麟佐, 1695∼1728)의 증조부 이응시(李應蓍, 1594~1660, 이조참판)이고, 이응시 손위동서 의금부도사 한복윤(韓復胤, 1574~1660, 정약 둘째사위)은 한악(韓渥) 10세(9대)손이고, 무신혁명 핵심 인물인 원주 출생 한세홍(韓世弘, 1685~1728)은 16세손이다.
*이 블로그 '창녕조씨 태복경공 조흥 고려 생진시 동년록과 조상림-조명수' 참조: https://m.blog.naver.com/antlsguraud/221431313081
(1728년 무신혁명 대장군 휘 聖佐 8세손 曺濽溶)







